[전시회]대고려전:아직 독립하지 못한 유물들
대고려 918-2018, 그 찬란한 도전
2019. 2.28.
3/3까지 전시라서 부랴부랴 갔다. 아침 일찍 가서 천천히 보려고 했으나 내가 간과한 것이 있었다. 바로 방학이다. 그래서 가족단위로 방문한 사람들이 많았다. 뭐 나쁘지 않았다.
조선에 비해 고려는 확실히 화려함의 진수를 보여주는 전시라 기대됐다.
청자를 이용한 악기를 만든다는게 귀족들의 문화를 느낄 수 있다. 굽는 것도 만만치 않았을텐데, 청자생산 기술의 수준이 높았음을 볼 수 있었다. 또한 다양한 청자문화도.
고려-불교=0 전시 곳곳에 불경 속 문구를 만나 볼 수 있다. 곱씹어보면서 생각할 거리를 던져줬다. 이미 알고 있지만 실천하기 힘들거나 또는 잊어버린 것들을 다시금 새겨볼 수 있었다.
특히 불상 옆에 있는 문구가 마음을 쿵 두드렸다.
지나간 일을 슬퍼하지 말며, 오지 않는 미래를 염려하지 말며, 지금 이 순간을 진실하게 살아가라 합니다.
사람이 괴로운 이유는 현실에 살지 않기 때문이라고 한다. 나 역시 과거를 후회하는데 시간을 쓰기도 했고, 미래를 걱정하면서 보내기도 했다. 이게 나쁘지는 않았다. 다시금 실수하지 않게 하는 반추의 역할을 하기도 했다. 걱정은 때로는 원동력이 되어서 목표 달성에 큰 힘이 되기도 했다.
그럼에도 나는 행복한가? 아니 행복했나?라는 물음에 차마 답할 수 없다. 얻은 것은 있으니까 부족하지 않았다. 그래도 내 삶의 궤적을 생각해보면 진정 원하는 삶인가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었다.
이때 당시 고려인들도 지금과 똑같은 걱정과 후회로 살았을테고 시대를 관통하는 철학은 아직까지도 인정받을 만한 이유가 있구나 싶었다. 현재의 나한테까지도 많은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니까.
여기서 울컥했다. 눈물이 났었는데 왜 인지는 모르겠다.
화려한 책자들. 글자를 금으로 다시 입혔다. 섬세함에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이렇게해서까지 전해주고 싶은 그들의 마음은 어떤 걸까?
연꽃 위에 앉아있는 관세음보살 : 자비로 중생들의 괴로움을 구제하고 극락왕생으로 인도하는 보살이다. 찾아보니깐 연꽃위에 앉아있는 것은 순수함을 의미한다고 한다. 속세에 때가 묻어 괴로워하는 중생들을 새로이 정화하는 의미로 연꽃 위에 앉아있는 것 같다.
창녕군부인의 발원문
여성의 몸이 평등하다던 고려시대 여인한테는 확실히 족쇄였던 것 같았다. 하고싶은데 못하는 것은 정말 다르니까. 나 역시 종종 "네가 남자였으면 더 좋은 평가 받았을텐데,,"라는 소리를 듣곤 했다. 그때마다 어쩔?이라는 생각으로 정신승리를 하곤 했다.
이때나 지금이나 자신의 소망을 이루는데 성별이라는 바꿀수도 없는 걸림돌에 무기력감을 느끼게 했을 것이다.
전시회 막간으로 오설록과 콜라보레이션이다.
차의 향이 전시회장을 풍겼다. 따뜻하면서도 감미로웠다. 화려한 멋을 눈으로 느낄 수 있는 전시라서 담백한 차향이 더 매력적이었다. 코로 느낄 수 있는 다양한 맛을 자극했다.
전시회 포스터에 있는 메인 유물이었다. 생각보다 작아서 놀랬다. 한 10센치 될려나? 작으니깐 금속 제련, 세공하는 기술이 얼마나 높았는지 알 수 있었다.
퇴장하니깐 사람들이 줄서서 들어갔다. 생각보다 내가 넉넉하게 본 듯,,,
일본에서 대여한 유물 중에 사진 촬영이 불가한 것이 있었다. 음침하다. 훔쳐간 주제에 어휴..
아경면선 버블리 세트1을 골랐다. 부추와 고수를 고명으로 선택할 수 있었다. 곱창국수를 처음 먹어봐서 안전빵으로 부추를 골랐다. 다음에 고수를 넣어도 괜찮을 것 같다. 국물이 좀 뜨거워서 입천장 까졌다. ㅋㅋㅋ 버블티로 긴급 응급조치는 했지만 넘나 늦은 것. 근데, 블랙 버블티는 약간 밍밍해서 아쉽다. 처음에는 양이 넘 작아서 약간 후회가 들었는데, 버블티까지 먹으니깐 완전 배불렀다. 작은거 시키길 잘한듯.
<항거>
용산 아이파크 CGV를 갔다.
영화는 흑과 색으로 구분해 고문과정와 독립에 대한 희망으로 보여진다. 워낙 신파라고 하면 신파라고 할 수 있는 내용이라서 연기와 연출이 담담하게 그릴려고 노력했던 것 같다.
유관순 열사 정말 존경하고, 굳은 심지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그리고 그 곳에서도 따뜻한 봄을 맞이하셨으면 하는 작은 바람이었다. 지금이라도 늦었지만 우리 역사에서 지워진 여성 독립운동가들을 새로이 발굴하고 조명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