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몸으로 거의 30년 가까이 살아왔지만 너무 몰랐던거 같아서, 바쁘게 사느라 내 자신을 돌보지 못한 죄책감이 들었다. 최근 내 삶의 가장 큰 이슈가 있고, 아직 현재 진행 중이다. 불과 몇 달만에 순식간에 달라진 상황이 처음에는 적응이 되지 않았고, 내 스스로 신경써야했다. 평소 생각지도 못한 걸로 신경쓰니 힘들 수 밖에 없었다.
심리검사는 끝났다. 하지만 그 결과만으로는 정확하게 파악할 수가 없어서 초기상담을 받았다. 가장 먼저 받은 질문은, 심리검사 동기를 물어봤다. 예전부터 하고 싶었다. 어떤 사람인지 궁금했다. 자아탐구랄까? 기계 사용설명서처럼 내 자신을 위한 사용설명서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늘 생각해왔다. 어떤 걸 싫어하는지, 어떤 걸 좋아하는지, 발작버튼 같은거 말이다. 알았다면 굳이 경험하지 않더라도 미리 알고 지나갈 수 있으니까.
상담가가 상담결과를 보고 하시는 말이 문장완성검사 결과가 좋지 않아, 상담이 약간 필요하다고 말했다. 좀 싫었다. 마치 내가 환자가 되어버린거 같았다. 조심스럽게 말씀하시길 음,,, 사실 심리검사가 중요한게 아니라고. 모르겠다 지금 이 상황이 힘들어서 더 힘든건지, 아니면 심리적으로 원래 문제가 있던 사람인지... 내가 최근에 읽은 책 '이기적 감정'에 나오는 부분이 있다.
인간은 누구나 괴로운 감정을 벗어나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괴로운 감정에도 다 이유가 있다. 그런 감정들은 좋지 못한 상황을 변화시키거나 피하거나 벗어나려는 노력을 유도한다. (중략) 사실 가장 보편적이고 효과적인 전략이 있다.
그냥 기다리는 것이다. 기다리면 상황이 변한다.
이 상황도 견디다보면 지나갈 것이라고 믿는다. 항상 그랬듯이. 시간이 약이라는 말처럼 시간이 지날수록 기억은 희미해지고, 다른 경험으로 채우다보면 따끔했던 상처는 아물어졌던 것처럼 말이다.
나에게 했던 말 중에 인상 깊었던 말이 있었다. 애쓰지 않아도 된다. 최근에 너무 애쓰면서, 너무 열심히 살았나 후회했다. 아마 이런 생각들이 내담을 통해 드러났던 거 같다. 누가 쫓아오지도 않는데, 쫓겨서 앞만 보고 달려온거 같고, 정작 내가 내 자신을 위한 중요한 가치를 챙기지 못했다.
씩씩한 척 할 필요없다는 말. 나도 모르게 씩씩한 척을 하면 살아왔다. 누군가에게 기대는 것은 나에게 민폐처럼 느껴졌다. 뭐, 기댈만한 상황이 아니지 않았냐며 위로도 하셨지만, 나에게 삶이란 혼자 나아가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상담가는 오히려 의존과 독립 사이를 오가는 것이 중요하다면서, 의존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의존을 통해 느낄 수 있는 안정감, 즉 비빌언덕이 있어야 된다는 말이었다. 아직 나에게 비빌언덕이 없어서 잘 모르겠다.
상담가가 나에게 너무 철학가처럼 말한다고 했다. 마치 인생 다 산 사람처럼 그 나이같이 않다고. 이 말을 계속 많이 들었다. 일한지 기껏해야 4년밖에 안됐는데, 거의 10년 경력자처럼 느껴진다고, 가끔씩 노인네처럼 말한다고. 늙은이 같나보다. 살면서 어느정도는 타협하면서 살아가는 것인데, 굳이 내가 바꿀 수 없는 부분은 포기 or 체념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해서 그런거 같다. 포기도 용기있는 사람이 하는 선택이라고 하지 않냐
이번 상담을 통해 불편한 진실을 마주할 것 같아서 사실 두려웠다. 겁이 많다. 그래서 주저했다. 특히, 최근에 내가 가장 분노했던 일이 생각났다. "씩씩하네"라는 말을 들은 내가 분노했던 이유를 알게됐다. 내가 힘들다는 것을 남들이 알아챘으면 했던 것이었다. 지금 이렇게 괜찮은 척, 의연한 척 하는 것 뿐이라고, 실제론 불안하고, 걱정되고 화가 났다는 것을 말이다. 내 마음도 몰라줬던 사람들에게 화났던 것이다. 뭐 그래도 그 사람이 좋은 사람이라고 합리화하는 건 아니다. 그 사람은 그냥 그렇게 생겨먹은 사람이라는 거.
아직 심리검사결과 듣기까지는 며칠이 남았다. 어떻게 나올지는 그때 가서 알게 될 것이고, 지금은 그냥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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